두 도시 이야기 홍콩편 #7 홍콩 회사의 심연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홍콩 패션 회사 라이프 그 두 번째 이야기
“PICK”
또 다른 리서치 프로젝트로는 “PICK” 프로세스를 효율화하는 일이 있었다. “픽”이라는 것은 온라인 스토어에서 주문이 발생했을 때, 창고에 있는 물건을 특정하고 수거하여 배송하기까지의 처리 과정을 말한다. 이렇게 쓰고 나니 정말 간단한 일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일단 주문이 들어온 물건이 반드시 홍콩의 창고에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회사는 중국 대륙에도 몇 곳의 창고를 가지고 있어, 홍콩에 재고가 없을 경우에는 중국 쪽의 창고에 문의를 해서 물건을 배송받아야 했다. 시간도 많이 걸렸고 배송 과정에서 깨지기 쉬운 화장품 같은 물건이 파손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또 우리는 백화점이다보니 입점해 있는 브랜드들이 재고를 각자 관리하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어 온라인 스토어에서 샤넬 컴팩트의 주문이 들어왔다면, 우리 회사의 직원이 재고가 필요하다는 서류를 종이에 프린트해 직접 들고 매장 내의 샤넬 스토어로 찾아가야 했다. 스토어에서 컴팩트를 받고 나면, 그걸 다시 창고에 보냈고, 창고가 고객의 주소지로 배송했다.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이 프로세스를 간소화하고 효율화하기 위해서 우리는 현장 조사를 진행했고, 매장에 직접 찾아가 스탭들에게 이야기를 들었고, 창고를 방문해 ‘픽’이 진행되는 절차를 관찰했다.
매장과 창고를 뛰어다니며 우리는 많은 문제를 발견했다. 아마존이나 징둥과 같은 선진적인 전자상거래 기업에서는 이 과정이 완전 자동으로 진행된다고도 했지만, 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같은 백화점의 경우에는 꿈만 같은 소리였다. 매번 직원들이 프린트를 사용해 서류를 출력해야 했고 사람이 재고를 체크하고 꺼내와야 했기에 오류도 잦았다.
“픽”을 위한 전용 앱은 스탭이 별도로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설정해야 해서 번거로웠을 뿐만 아니라 버그도 많았다. 앱에서 재고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정작 찾아가면 재고가 없어 허탕을 쳤다는 일화를 무수히 들었다.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지나친 기대
“픽” 프로세스 개선을 위해서 다양한 부서를 찾아다니며 조사 활동을 진행하면서 나는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이런 일이 다발했다. 부서장인 크로스토프가 갑자기 내게 매장에 가서 입점 브랜드의 직원들에게 가서 인터뷰를 하라고 시킨다. 나는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매장을 찾는다. 그리고 매장에서 직원들에게 ‘네가 누군지도 모르고, 너랑 얘기해보라는 지시는 들은 적이 없다’는 말을 들으며 허탕을 치는 식이었다. 미팅을 주선하려면 상대방 측에 미리 언질을 주는 것이 매너 아닌가?
당시의 내 연봉이 주위에 비해 높은 수준이었기에 그는 내게 높은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야말로, 혼자서 척척 뭐든 해내며 회사의 프로세스를 근본적으로 개선해 내길 바란것 같다. 그러나 나는 디지털 디자인을 맡아 하는 UX 디자이너에 불과했기에 기존의 물류 처리 방식에 손을 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급진적인 해결책을 시도하려면 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맡은 바 일을 하지도 않고, 제대로 지시를 내리지도 않고, 나만 보면 “너 정도 월급이면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사전 합의를 통해 다른 팀이 하기로 되어 있던 일도 “왜 네가 하지 않느냐?”라며 미팅에서 나를 콕 집어 공격하는 일도 있었다. 기대가 크다면, 권한을 함께 주거나, 합당한 서포트를 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괴롭힘에 가까운 그의 태도에 부당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기술에 대한 이해와 비전의 부재
나는 이 회사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다. 일 년을 딱 채우고는 사직서를 내고 말았다. 크리스토프의 부당한 대우 이외에도 다른 문제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먼저 이 회사가 내가 지금까지 함께 일해왔던 기술 기업들과는 크게 달리 오프라인 장사를 주력으로 하는 패션 회사라는 점이 큰 문제가 되었다. 그 누구도 온라인 사업에 대한 제대로 된 비전을 갖고 있지 않았다. 내 직속 상사인 몰리는 이메일 프로그램도 제대로 못 다뤘고, 회의록 작성도 컴퓨터로 하지 못해 내게 휘갈겨 쓴 수첩을 던져주기 일쑤였다. 언젠가는 서버가 다운된 적이 있었는데,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해 온라인 스토어 재오픈에 일주일이 넘게 걸렸고 SNS에서는 고객의 불만이 폭주했다.
뭐 하나 디자인을 변경해 달라며 테크 팀에 견적을 문의하면 일 년은 걸린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리 많은 리서치를 하고 예쁜 디자인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개발이 도저히 진행되지 않았으니까.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라는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예산을 항상 줄이고자 혈안이 되어있었던 크리스토프는 이미 충분히 짧게 설정한 내 타임라인을 보고도 깎지 못해 안달이었다. 3일 걸린다는 견적을 내면, 항상 2일로 깎아달라고 언쟁을 벌이느라 하루 이상을 소모했다.
마치 블랙 코미디같은 수많은 에피소드를 통해 나는 이곳이 기술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단순히 비싼 물건을 떼어다가 파는 옷가게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할 판에, 항상 어떻게든 온라인에 드는 예산을 깎고자 안달이었다. 발전이 있을 수가 없었다.
홍콩 로컬 기업의 어두운 면
이 회사는 200년 전에 영국 출신의 사업가들이 창업하여 글로벌한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나쁜 의미로 전형적인 홍콩 기업이라고 불러도 될 만 했다. 윗자리는 모두 무능한 백인 매니저들이 꿰차고 있었고, 사원들은 실무는 뒷전이고 가십과 정치질에 열심이었다.
우리 부서에는 끼리끼리 몰려다니는 그룹이 있었는데 그들은 항상 점심도 같이 먹었고 휴일에는 해외 여행도 같이 다니는 모양이었다. 회사에서 친구를 만드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끼리끼리 문화는 도를 넘었다.
함께 일하는 주니어 디자이너 마리나도 이 그룹의 일원이었다. 내가 업무상 필요한 자료가 있어 다른 팀 멤버에게 달라고 요청했더니, “그건 마리나한테 줄건데?”라는 황당한 대답을 받고 나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유저 인터뷰 브리핑을 위해서 마리나에게 조금 일찍 오라고 지시했더니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자기 그룹 친구들과 카페에 다녀오겠다며 매번 지각을 했다. 중요한 논의를 하는 중에 일부러 영어에서 광동어로 바꾸어 말하는 일도 많았다. 마리나와 친구들은 그룹 일원 중 누군가가 생일을 맞거나 퇴사하게 되면 부서 전원에게 돈을 걷어가 화려한 파티를 열어주고, 나에게는 케이크 부스러기도 주지 않았다.
나는 회사에서 친구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외롭거나 서글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홍콩 로컬들은 외국인들을 위협 요소로 보았으나 지위가 높은 백인들에게는 쉽게 대들지 못했다. 하지만 나같은 한국인 여성은 만만하게 보고 노골적으로 견제했던 것이다. 홍콩 특유의 집단주의와 권위주의를 몸소 체험하면서, 하루하루가 숨이 턱턱 막혔다.
길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을 일부 할 수 있었지만,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인간적인 대접도 받지 못했다. 입사 후 반 년쯤 지나서 이미 나는 다른 회사를 찾기 시작했고, 미국계 스타트업의 오퍼를 받아 일년을 딱 채우고 나서는 사직서를 냈다. ‘아닌 것 같으면 빨리 빠져나오자’는 나의 이직 모토가 이번에도 나를 구해주었다.
두 도시 이야기 홍콩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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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모임 참여 수요조사가 끝난 것 같네요 ㅠㅜ 다음에 기회가 되면 참여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