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가 아닌 성장으로 내면의 공허를 채우는 법
현실을 회피하기 위한 눈앞의 쾌락 추구에 의미와 목표를 부여해보자

어떤 쾌락은 미래의 고통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그러므로 피해야 한다. 폐암의 고통은 흡연의 쾌락보다 더 크다. 마찬가지로 어떤 고통은 미래의 쾌락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러므로 견뎌야 한다. 예를 들면 운동을 하는 고통이 그렇다.
- 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지난 번 이슈 <20대 중후반, 대체 왜 이렇게 힘든걸까?>는 재미있게 읽어보셨나요? 이 글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저는 지독한 쿼터라이프 크라이시스를 겪었습니다.
20대 후반, 일도 직장도 너무나 싫었던 저는 금요일 저녁에 슈퍼마켓에 들러 3일치의 식량을 사서 집으로 들어가, 월요일 아침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신적으로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기에 나가서 활동을 하거나, 몸을 움직일 기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는 드라마와 영화를 보는 것 뿐이었습니다. 현실이 지독하게 싫었기에, 픽션 작품에 푹 빠져 있을 때만은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현실에서 느끼는 고통을 픽션에 몰입해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이 저의 스트레스 대처 방식이었습니다.
심할 때에는 밤을 새워가며 열 시간, 스무 시간이 넘게 피자 조각을 씹으며 빈지 워칭을 하면서, 차차 이러한 행동이 나 자신을 파괴하고 있다는 감각이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인생의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며, 몸과 마음을 해치는 일을 계속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의 쾌락에 의미와 목표를 부여하기
그렇다고 해서 빈지 워칭을 그만두고 갑자기 밖으로 나가 마라톤을 뛸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드라마와 영화에 몰두하는 행동 자체를 바꾸지는 않았지만, 그에 의미를 부여해 보았습니다. 바로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가?,” “이걸 하면 무엇이 좋은가?”를 생각해 보기 시작한 것이죠.
저는 미래에 영어권으로 가서,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드라마와 영화를 보는 저의 행동에 ‘언젠가 해외에서 영어로 일하기 위한 것’이라는 목표를 부여해 보았습니다. 똑같이 10시간 빈지 워칭을 하더라도, 단순히 현실 도피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10시간을 낭비한 것이 됩니다. 하지만 영어 공부라고 생각하면 10시간의 학습 시간을 획득한 것이 됩니다.
이렇게 의미와 목표를 부여하고 나니, 저의 행동에도 미세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한국이나 일본 드라마가 아닌 영미권의 드라마를 더 많이 보게 되었고, 한국어나 일본어 자막은 꺼버리고 영어 자막을 켜기 시작했습니다. 도중에 모르는 말이 나오면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자주 쓰이는 표현이 나오면 적어 두기도 했습니다.
변화는 더 큰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회사에서 영어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자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영어로 진행하는 외국인들의 네트워킹 모임을 찾아보고 참가했습니다. 여행을 다닐 때에도 영어권을 목적지로 삼아, 업계인들의 모임에 참가해 영어로 교류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렇게 미래의 커리어를 위한 자기 계발이라는 명목으로 미국 드라마를 빈지 워칭하는 습관은 10여년간 이어졌습니다. 무수한 시간이 쌓이고 쌓여 제 영어 실력은 꽤나 유창한 레벨에 도달하였고, 결국 일본 내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계 에이전시에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일본을 빠져나와 홍콩에서 일상적으로 영어를 사용하며 글로벌한 동료, 또 클라이언트들과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쾌락을 점검하며 계산하기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해서 누구나 쾌락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담배나 술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고, 쇼핑이나 여행,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간이 눈앞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성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쾌락 추구가 자기 파괴적이어서 미래의 내게 고통을 안겨주는 일이라면, 점검과 계산이 필요할 때입니다. 지나치게 단기적인 쾌락은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더욱 악화시킬 뿐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돈을 모아서 경제적 자유를 이루어야 일을 덜 할 수 있는 선택권을 얻을 수 있는 것인데, 일이 싫다고 해서 거액의 돈을 쓰는 것으로 현실을 회피하고 있다면 문제 해결은 더욱 요원해집니다. 과음과 폭식, 각종 중독에 빠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추구하는 쾌락이 어떻게 미래의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내가 마주한 현실의 문제는 무엇인가? 또 그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는가? 또는 회피하려 하고 있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게 필요한 스킬이나 자원은 무엇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면, 나는 어떤 식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가?
내가 추구하는 쾌락은 미래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현재의 쾌락을 추구하면서도, 건설적인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현재의 쾌락과 미래의 성취 간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쾌락을 절제할 필요가 있다면, 어느 정도 선까지 용납할 것인가?
현실의 고통에 맞서기 위해서 어떻게 장기간 끈기와 회복탄력성을 유지할 것인가?
과거에 현실 문제를 해결한 경험에서 얻은 교훈은? 이번에는 어떻게 더 잘 할 수 있는가?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보기
영어 드라마를 보는 습관 때문에 영어 실력을 키울 수 있었고, ‘영어권에서 일하고 싶다’는 하나의 커다란 커리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마법과 같이 행복한 일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일터에서 다양한 스트레스를 마주하며, 다음 도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는 중입니다.
제가 지금 추구하고 있는 쾌락은 바로 운동입니다. 특히 피겨 스케이트와 롤러 스케이트에 푹 빠져 있어요. 바람을 가르며 두어시간을 쌩쌩 달리고 나면 짜증났던 일들은 대체로 다 기억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현실을 잊고 몰두할 수 있어 더없는 쾌락을 가져다 주는 취미이지만, 미래의 내게도 유익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죄의식 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운동을 하는 시간이 쌓이고 쌓이면, 5년 후, 10년 후의 저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하고 글을 쓰는 충분히 행복한 일상을 일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추구하는 쾌락도 미래에 더 큰 결실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기를 바랍니다.
커진여 멤버를 위한 봄의 온라인 모임
멤버 특전에는 계절마다 열리는 온라인 모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참가율이 저조해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모임을 만들어 갈 수 있는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봄의 온라인 미팅은 멤버 분의 참가를 우선해서 받되, 좀 더 참가 범위를 확대해서 의미있는 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생각해 보려 합니다.
아래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협조 부탁드리고, 설문지의 한계로 인해서 정답은 하나밖에 선택하실 수 없지만 다른 의견이 있으시다면 코멘트로 남겨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