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가 직장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해요. 뉴스레터를 통해서 여성의 커리어에 대한 다양한 화제를 보내드리고 있지만, 정작 글을 쓰는 제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셨다면 이번 편이 이해를 돕는 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저는 현재 홍콩의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일하고 있고요, 이 회사는 본래 홍콩에서 30년이 넘게 비즈니스를 전개해왔지만, 수 년 전에 글로벌 에이전시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상당히 로컬한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글로벌 표준에 발맞추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이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2년 반 전이고, 지금껏 주로 홍콩의 클라이언트의 일을 맡아 했지만, 최근에는 글로벌 팀과 교류하며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또 지금껏 UX 리드라는 타이틀을 달고 일해왔지만, 7월부터는 UX 디렉터로 승진하게 되어 개별 프로젝트 수행보다도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책무가 주어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홍콩에서 탑 레벨의 UX 팀을 꾸리고, 큰 규모의 UX 프로젝트를 따오고, 글로벌 네트워크와 연계할 수 있을지,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접근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 저의 매우 바쁜 어떤 날의 일정을 따라가면서, 제가 일터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팀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어떤 아웃풋을 제공하는지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7:00am 글로벌 팀과 일하는 고통
얼마 전 일본 오피스에서 UX 전략을 담당해 줄 사람을 찾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홍콩의 일은 나쁘지는 않지만, 지난 2년간 비슷비슷한 클라이언트의 일을 맡아 하다 보니 조금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고 싶던 참이어서, 제가 손을 들었습니다.
주어진 일은 일본 클라이언트의 글로벌 브랜드 웹사이트를 새로 디자인하는 일이었고, 일본 오피스가 클라이언트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하고 있었지만, 실무자가 부족하여 홍콩, 싱가폴, 미국 등에서 팀원을 모아 상당히 글로벌한 팀 체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본어가 가능하기 때문에 제 능력을 풀로 사용할 수 있는 이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어 좋았어요. 하지만 이런 팀 구성으로 모두가 모일 수 있는 시간은 홍콩 시간으로 이른 아침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이다보니 미팅을 자주 가져야 했습니다.
오늘은 미국 팀과 디자인 시스템을 논의하는 미팅이 아침 7시부터 잡혀 있었습니다. 그쪽 시간으로 저녁 7시일테니까, 미국 팀도 나름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는 거겠죠. 하지만 아침 7시에 미팅을 시작해야 하는 제 고통이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이른 시간이기 때문에, 오피스에 나갈 수는 없었습니다. 6시 50분에 일어나 겨우 세수만 하고 랩탑 앞에 앉았습니다. 미국 팀과 디자인 시스템 리뷰를 하고, 일본 팀과 스탠드업을 하고, 일본의 디자이너들과 이야기하고 나니 9시 반이 되었습니다.
남들은 아직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이지만 저는 이미 녹초가 되었습니다. 잠시 한숨을 돌리고, 씻고 아침을 먹고 11시까지 오피스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CEO와 제 직속 상사, 인사팀에게는 이런 사정을 미리 말해두어, 조금 늦게 나갈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았습니다.
1:00pm UX 팀 미팅
거의 저 혼자서 여러 프로젝트를 붙잡고 낑낑대던 시절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대규모의 UX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되면서 채용을 늘려, 이제는 4명의 팀이 되었습니다. 매주 짧게 팀 미팅을 설정해 모든 UX 프로젝트의 현황을 공유하고, 팀원들에게 일을 어사인하고, 진척 상황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1:30pm UX 팀 런치
오피스에는 매일매일 밥을 같이 먹으며 친목을 돈독히 다지는 그룹도 있습니다. 하지만 UX팀원들은 대개 내향적이라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하고, 저희 모두 굳이 매일 맛집 탐방을 다녀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충 샌드위치나 주먹밥으로 때우고, 일을 빨리 끝내고 집에 일찍 가는 것을 더 선호하는 팀 분위기입니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팀원들과 점심을 먹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하는 편이지만 팀빌딩 차원에서 서로 잡담도 하고, 주말을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도 하면서 적정선의 친목을 다지는 것이 목적입니다.
오늘은 좀 멀리 있는 괜찮은 레스토랑에 가보려고 밖에 나왔으나, 기온이 36도에 이르는 탓에 포기하고 오피스 바로 밑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함께 파스타를 먹었습니다. 팀원 두 명은 항상 주말에 여행과 파티 등으로 바쁘다고 하지만, 저는 주말에 아이스 링크에서 스케이트 연습을 열심히 한 이야기만 매주 반복할 뿐입니다.
3:00pm 경쟁 피티 작전 회의
어카운트 서비스 팀이 새로운 경쟁 피티 제안을 가지고 왔습니다. UX/UI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보통 가장 먼저 제게 웹사이트나 앱의 정보 구조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옵니다. 제안서를 꼼꼼히 읽고,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현재 사용 가능한 콘텐츠는 무엇인지, 생각을 정리해 홈페이지의 와이어프레임을 제작합니다.
와이어프레임은 본격적으로 디자인을 시작하기 전에, 흑백으로 그린 설계도라고 보면 됩니다. 어떤 순서로 콘텐츠를 배열해야 하는지, 카피는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는지, 어떤 이미지를 어디에 삽입해야 하는지 대략의 얼개를 짜서 시각화한 것입니다.
그 후에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들에게 브리핑을 하며 제 의도를 전합니다. 제 손을 떠나고 나면 이제 크리에이티브 팀이 예쁜 색깔도 입히고, 폰트도 정리하고, 이미지와 영상, 귀여운 3D 캐릭터를 활용해서 최종적인 디자인 안을 만들어 냅니다.
저는 그동안 사이트맵을 제작하고, 몇 개의 페이지를 만들어야 하는지, 템플릿은 몇 개가 될 예정인지 정리합니다. 이 정보를 활용해서 어카운트 서비스 팀이 비용을 산정합니다. 디자인과 비용이 경쟁력을 갖춰야 프로젝트를 따낼 확률이 커지기 때문에, 좋은 결과물을 내는 능력 이상으로 효율적으로 설계하고 견적을 내는 스킬이 필요합니다.
최근에는 “Discovery” 즉,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실시하는 인터뷰, 앙케이트, 워크샵, 경합 조사 등의 리서치 프로세스를 의뢰하는 클라이언트도 늘어났습니다. 제 중점 분야가 리서치인만큼, 이러한 경쟁 피티의 경우에는 제가 중심에 서서 모든 과정을 리딩합니다.
5:00pm 클라이언트 미팅
클라이언트의 오피스에 매일매일 찾아갈 필요는 없지만, 중요한 일이 마무리될 때마다 관계자 앞에서 직접 공유하곤 합니다. 오늘은 지금껏 열심히 실시한 유저 리서치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회사에는 클라이언트 미팅에 사용할 수 있는 전용 차가 있습니다. 미리 인사팀에게 알려 차를 예약하면, 드라이버가 정해진 시간에 저희를 데리러 옵니다. 발표를 해야 하는 저와 또 한 명의 UX 팀원, 그리고 프로젝트 매니저들, 어카운트 매니저들, 이렇게 여섯 명이 모여 클라이언트 오피스로 향하기로 합니다.
홍콩은 워낙 좁고, 대체로 많은 클라이언트의 오피스가 홍콩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곳에 가든 20분 안에 도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도 센트럴에 있는 클라이언트 오피스까지, 회사 차로 15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도착해서는 클라이언트 앞에서 발표합니다. 많은 클라이언트가 광동어 커뮤니케이션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어카운트 매니저가 미리, 오늘은 광동어로 이야기해도 되지만 우리 UX 디렉터인 소이빈은 한국인이라 영어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미리 언질을 합니다. 그러면서 소이빈은 광동어를 대충 알아듣기 때문에 괜찮다는 멘트도 빼먹지 않습니다.
발표를 하고, 질문을 받아 응답을 하고, 클라이언트가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 오피스를 나오니 오후 6시입니다. 정시는 6시 반이지만, 저는 오늘 일찍부터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바로 집으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센트럴에 나온 김에 IFC몰에 가서 저녁에 먹을 도시락도 하고, 과일도 사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합니다. 버스 안에서는 오늘 하루 있었던 일로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갑니다. 정말 정신없이 바빴지만 많은 일을 해내어 뿌듯한 하루였습니다.
이런 하루가 쌓이고 쌓여 제 커리어의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매일매일 현재에 충실할 수 있는 일을 즐기며 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오늘도 재미있게 읽어주셨길 바라며, 혹시 질문이나 의견 있으시다면 코멘트란을 활용해주세요. 독자분들 모두 더운 계절, 건강을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