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서비스 디자인을 가르치기
지난 3개월의 뉴스레터 휴지 기간동안 귀중한 경험을 쌓고 돌아왔습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저는 지난 9월부터 홍콩 이공 대학에서 서비스 디자인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학기 총 13주의 수업을 통째로 맡아서 가르쳐 본 것은 처음이라,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결국 즐겁게 학교 생활을 일과 병행하고 있습니다.
학기가 끝나는 것은 12월 중순으로, 수업은 아직 몇 주 더 남아있지만 제가 준비해야 하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다시 정기적으로 뉴스레터를 발행하려 합니다. 오늘은 제가 대학에서 경험하고 느낀 점들을 공유해보려고 해요.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된 경위
저는 석사 과정을 마치기는 했지만, 대학원 생활을 끔찍하게 싫어했습니다. 지도 교수의 태만과 유학생 차별과 같은 이유도 있었지만, 연구만 하는 것으로는 뭔가 성에 차지 않았고 한 사람 분의 일을 하고 있는 보람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랜 기간 학계와는 아주 먼 거리를 두고, 현장 경험을 쌓는 데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러다가 UX라는 분야를 발견하고 큰 열정을 갖게 되어 관련 컨퍼런스에 닥치는 대로 참가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홍콩에는 UX Hong Kong이라는 연례 행사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당시 도쿄 공업 대학 교수로 일하고 계시던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홍콩까지 출장을 오신 거였어요.
링크드인으로 친구를 맺고 느슨한 관계가 된 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그 분이 홍콩 이공 대학의 교수로 오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메시지를 보내 점심을 먹게 되었고, 제가 가르치는 일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신 교수님께서 게스트 스피커로 강의를 할 기회를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학기에는 가르쳐야 하는 과목이 너무 많아져 제가 한 과목을 통째로 맡아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어서 일정 조정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금요일 오후에만 시간을 내면 되는 일이었고, 상사와 매주 0.5일의 연차를 쓰면서 진행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학생들은 누구인가
사실 급하게 성사된 일이라 수업을 시작하기 전까지도 저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누군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석사 1학년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학부 3학년이라고 했습니다. 또 나중에 들어보니 이 서비스 디자인이라는 전공이 학부에 생긴게 올해가 처음이라고도 했습니다.
게다가 서비스 디자인 전공생들이라고 해서 기본 지식을 갖춘 채로 제 수업에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3학년부터 편입한 경우가 많아 전공에 대한 아무런 개념을 잡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1학년부터 시작해서 올라온 학생들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실 서비스 디자인은 인기 전공이 아니라, 성적 때문에 1순위로 가지 못하고 불가피하게 이 전공을 고르게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비인기 전공이다보니 은은한 패배주의가 깔려있었고 출석이나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수업은 애초에 전공생들의 성적과 동기를 개선하고, 대외적으로는 비인기 전공이라는 이미지를 불식해야 한다는 난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지만, 은근히 책임이 막중했던 것이죠.
그래서 무엇을 가르쳤는가
제가 받은 요청은 전공생들이 팀을 짜서 실용적인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도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졸업하고 나서 실제 프로젝트에 투입될 경우에 활용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이 수업의 주 목적이었습니다.
이론을 세세하게 가르칠 필요는 없다고 했기 때문에, 서비스 디자인의 기본적인 프로세스를 따라가면서 리서치나 전략 수립, 디자인 검증 등의 필수적인 활동을 대략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13주의 흐름을 설계했습니다.
홍콩에서 졸업을 하고 직업을 가진다면 사실 선택지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제조업의 근간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이 금융, 관광, 상거래, 교육 등의 서비스에 관련된 일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네 가지 테마 중에서 하나씩 골라서 관련 아이디어를 짜고 서비스까지 개발하라는 도전 과제를 주었고, 세 팀이 각자 럭셔리 관광, 배달 서비스, 특수교육이라는 테마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각 팀이 실제 사회 생활을 하면서 접할 수 있는 디자인 프로젝트와 최대한 유사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배려했고, 첫 4주는 인터뷰와 앙케이트 등의 리서치를 하고 나서, 다음 2주간 결과를 분석하고 디자인 전략을 짜라는 가이드를 주었습니다. 6주가 지나 회사에서 하는 것처럼 전략 리포트를 가지고 발표회를 가지고 나니 꽤나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7주에서 12주까지는 실제로 디자인을 제작하고, 이 디자인을 유저들에게 보여주며 테스트를 해야 하는데요, 이 부분이 학생들에게는 조금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어디를 얼만큼 디자인해야 하는지, 테스트 시나리오는 어떻게 짜야 하는지,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등, 수업 중 질문이 끊이지 않습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찌저찌 낙오자 없이 끝까지 달려가는 중이라, 내심 뿌듯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학생들과도 원온원으로 이야기해본 결과, 모두는 아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업에 즐겁게 임하고 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해 주었습니다.
쉽지만은 않았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중간 발표 즈음하여 저는 학생들이 팀 프로젝트가 너무 힘들다며 호소하는 이메일을 다수 받았습니다.
누구는 바쁘다고 핑계를 댔는데 알고보니 친구와 잘만 놀러나갔고 인스타에 릴스가 올라왔다, 팀원들이 나를 무시해서 혼자 일하고 싶다 등등…학생들이니까 아직 인간 관계에서 미성숙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최대한 개별적으로 대화하며 각자의 문제를 해결해 주려 노력했습니다.
어떤 팀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중반 이후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팀은 골이 깊어진 상태로, 부정적인 에너지가 부딪히는 것을 자주 보아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 누구도 프리라이딩 하지 않고,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결과물을 만들어 주어 고마운 마음입니다.
이 학생들을 다음 학기에도 가르칠 지는 모르겠으나, 혼자가 아닌 팀과 함께 일하는 법을 이번에 조금이나마 배우고 깨우쳐, 앞으로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좋겠습니다. 이에 더해 학생들의 커리어 개발에 제가 조금이나마 긍정적이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3개월만에 학교 이야기로 돌아온 이번 뉴스레터는 어떠셨나요? 뉴스레터는 이전과 같이, 월 3회 그 중 1회는 무료, 2회는 멤버 전용으로 발신합니다.
다음 학기는 1월에서 4월로 예정되어 있지만 가능한 한 이번과 같은 장기 휴지 기간은 두지 않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간간히 1-2달 정도의 휴재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 알려드립니다.
멤버를 위한 쿠키🍪
한 학기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고, 일대일로 대화를 마치고 나니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기가 완전히 끝나고 난 후에, 조금 더 깊이있게 가르침과 배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공유한 내용보다도 한층 자세한 감상은 추후에 뉴스레터를 통해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금요일마다 아침에 일단 회사로 출근을 해서, 점심시간에 급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학교로 향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정말 바빠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캠퍼스에 도착하고 나면 기분이 밝아졌습니다. 일단 냉장고 같은 오피스에 하루종일 갇혀있던 제게, 캠퍼스는 너무나 싱그러웠습니다. 이렇게 나무가 많을 수 있다니! 잔디가 이렇게 파랗다니! 하늘이 이렇게 다 보이다니! 평소에는 쐬지 못하는 햇볕이 사치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하는 오피스가와 달리, 캠퍼스 내의 물가가 저렴한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구내의 퍼시픽 커피에서는 상시 30% 할인 가격을 적용받을 수 있었고, 점심도 싸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학기에도 수업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내심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습니다. 글쓰기와 같이 가르치는 일도 제 커리어의 단단한 축이 되어준다면 좋겠네요.
저의 앞으로의 성장 스토리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