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빈 선정 올해의 책 7권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올해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 7권을 선정해 보았습니다.
구독자 여러분의 2024년은 어떠셨나요? 저는 정말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바쁘게 보낸 한 해였습니다. 일하며 가르치며, 또 글을 쓰고 운동을 하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독서를 하려고 노력했고, 결과 총 30권의 책을 완독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껏 한 해에 50권 정도는 읽어 왔는데 올해는 정말 바빠서 이마저도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올해도 다양한 책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고, 오늘은 그 중에서 제가 재미있게 읽었고 또 추천할 만한 책을 7권 선정해서 보내드립니다. 네 권의 논픽션과 세 권의 픽션 작품을 골라보았습니다.
1. 알랭 드 보통, <불안>
저도 글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 책을 읽다 보면 ‘와!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같은 깊은 영감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바로 <불안>을 읽으면서 그렇게 느꼈어요.
이 책의 원제는 <Status anxiety>로, 주위의 인정과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려 애쓰는 현대인의 불안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가기보다는 역사, 문학, 철학, 사회학 등의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새로운 통찰을 보여주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이 책은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인간의 근원적 욕구임을 밝히면서도, 현대인들이 특히 불안에 시달리는 것은 봉건주의에서 능력주의로 사회의 가치가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중세 시대 농노는 가난하게 태어나 평생 고단 일을 해야 했어도, 자신의 소명이 그렇게 정해져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벌거나 지위의 사다리를 올라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평생을 살았던 것이죠.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가난이 즉 무능력으로 보여지고, 낮은 사회적 지위는 정체성의 위기와 직결되기 때문에 현대인들이 더 큰 심리적 압박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굉장히 신선한 관점이었어요.
후반에는 작가 나름대로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해답을 제시합니다. 몇 가지는 제게도 좋은 힌트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삶의 기능들을 최대한 완벽하게 다듬어 자신의 삶에, 나아가 자신의 소유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도움이 되는 영향력을 가장 광범위하게 발휘하는 그런 사람이 가장 부유하다.
2. 재닛 맥커디, <엄마가 죽어서 참 다행이야>
제목부터가 충격적인 이 책은 원래 미국에서 큰 베스트셀러로 관심을 받았습니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연기 활동을 해 온 아역 배우로, 니켈로디언의 히트작 <아이칼리>에 출연했습니다.
저는 세상의 거의 모든 픽션 작품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네 가족을 사랑하라’는 교훈을 강요하며, 결혼과 임신으로 해피 엔딩을 맞는 것이 너무 작위적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물론 가족을 정말 사랑하며 살 수 있다면 행복한 인생이겠으나, 가족과의 관계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더 많고, 그런 진실된 이야기들이 충분히 조명되고 있지 않다고 느낍니다.
이 책은 어린 재닛 맥커디가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뭐든지 했던 가슴아프고 유독(有毒)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엄마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서 싫어하는 연기를 계속하며 힘든 일을 겪었고, 엄마가 날씬해야 한다고 했기에 식사량을 줄이다가 거식증을 앓았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아닌 엄마를 위한 삶을 살다가 엄마를 암으로 잃고 난 뒤, 고통과 혼란을 겪지만 현실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과정 역시 보여줍니다.
엄마의 삶을 살고 싶지는 않지만 엄마를 미워할 수 없는 한국 여성으로서, 어떻게 엄마의 삶과 내 삶의 분리켜 건강한 성인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 볼 만한 계기를 제공해주는 책입니다.
3. 테사 웨스트, <사무실의 도른자들>
직장에서 인간 관계로 고민이 깊어졌을 때 표지만 보고 ‘바로 이 책이다!’라고 느꼈습니다. 원제는 <Jerks at work>이라니, 그 Jerk들에게 괴롭힘당하고 있는 입장에서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은 ‘사무실의 도른자들’을 강약약강형, 성과 도둑, 불도저, 무임승차자, 통제광, 불성실한 상사, 가스라이팅형의 7가지 패턴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들 행동의 이면에 놓여 있는 진짜 동기를 알아야 우리가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눈에 그들은 여러분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 말고는 할일이 없는, 무능한 멍청이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법으로는 멀리 가지 못한다. 능력은 있으나, 그 능력을 악독한 방향으로 발휘하는 사람이 회사마다 평균적으로 한 사람씩은 있다. 관건은 그들의 능력이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해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돌아이들은 사회적 인지능력이 뛰어나며 인맥도 많다. 그들을 과소평가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결과 이 책은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갈등 상황을 마주하면 화를 내거나 소통을 단절해 상황을 악화시키는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다양한 패턴의 도른자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있어, 제게 많은 좋은 아이디어를 주었습니다.
결국 제 사무실의 도른자들은 모두 퇴사했고, 제가 버티기 대결에서 승리했어요✌️
4. 닉 트렌턴, <생각 중독>
올해 소셜 미디어에서 ‘예민한 사람’에 대한 논의가 오가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저도 제가 지나치게 주변 환경에서 읽어내는 데이터의 양이 많고, 생각과 반추를 많이 하는 타입의 사람이라는 것을 최근 몇 년 사이에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다들 저처럼 머리가 터지도록 생각하며 사는 줄 알았어요.
이렇게 제가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자, 관련 서적도 의식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 역시 제목에 끌려서 펼쳐보게 되었는데, 내용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저자는 평소에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지쳐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은 유전적인 요인도 가지고 있지만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본성은 우리가 완전히 바꿀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의식적으로 사고 패턴을 통제하면서 생각의 폭주를 막고 자아 존중감을 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에 짓눌린 사람과 어떤 도전과 긴장이 닥쳐도 침착하게 대처하는 사람의 진정한 차이는 무엇일까? 모든 것은 태도에 달렸다.
이 책을 읽고 난 이후에 저는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은 집착하지 않고 흘려보내거나,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폭주해 버린 후에는 다시 가장 단순한 생각으로 되돌아가려는 등의 노력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 자신에게 너무 혹독하게 굴지 않고, 친절한 태도를 가지려 하고 있습니다.
5.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남은 세 권의 픽션 작품들은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올해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떠들썩한 한 해였죠. 한림원은 한강의 작품을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가했는데요, 제주 4·3사건을 다룬 이 책 역시 연약한 인간들이 겪어야 했던 역사적인 트라우마를 개인적인 레벨에서 깊숙하게 파고들었습니다.
역량 미달의 픽션 작품이 너무 많은 지금, 문학의 역할이란 무엇인가를 숙고하게 해 준 훌륭하고도 가슴아픈 소설이었습니다.
6. 에르난 디아스, <트러스트>
진실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관점과 입장에 따라서 다르게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라쇼몽>을 비롯한 수많은 픽션 작품에서 보아 왔습니다. 이 작품 역시 소설, 자서전, 회고록, 일기라는 다양한 네 가지의 형식을 취해, 진실이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정교하게 구성했습니다. 조금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원하시는 분이라면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7. 피터 스완슨, <살려 마땅한 사람들>
삶이 너무 지치고 피곤해서 머리를 쓰지 않아도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추리소설이 당길 때가 있지 않으신가요?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전작 <죽여 마땅한 사람들> 역시 굉장한 흡입력으로 한 권을 뚝딱 읽을 수 있었는데요, 이 작품 역시 몰입해서 즐길 수 있었습니다. 문학적으로 훌륭하다고 평할수는 없겠지만, 한번에 뚝딱 읽어버릴 수 있는 재밌는 소설을 찾으신다면 이 시리즈를 추천합니다. 전작을 먼저 읽으시는 걸 권해요.
올해는 정말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지만, 트위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독서 모임 #읽는여자 덕에 적어도 30권의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 같은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눌 수 있어서 많은 지적인 자극을 받고 있어요. 관심이 있으시다면 여러분도 스페이스로 참가 부탁드립니다.
그럼 여러분 모두 12월 잘 마무리하시길 바라며, 다음 번에 2024년 마지막 이슈로 찾아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