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간 휴지기간 / 지금껏 회사를 잘못 선택해온 이유
커리어의 분기점을 맞이한 지금, 뉴스레터를 잠시 쉬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안내사항을 확인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멤버 여러분, 오늘은 안내 사항이 있습니다. 홍콩은 9월에 학기가 시작하는데요, 이번 학기부터 파트타임으로 대학에서 서비스 디자인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가르치는 일을 꼭 해보고 싶었기도 하고, 제 커리어를 한층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업은 총 13주 코스이며, 현재 회사를 풀타임으로 다니면서 진행하는 일이기에, 많이 바빠질 예정으로, 9월 1일부터 3개월간 뉴스레터를 쉬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3개월간 결제는 발생하지 않으며, 그만큼 구독 기간은 연장됩니다. 연간 구독을 하셨다면 휴지 기간만큼 구독 기간이 늘어나 12개월이 아닌 15개월 후에 구독 갱신이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월구독을 하신 분들 역시, 이 3개월간 유료 컨텐츠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뉴스레터를 쉬어가게 되어 죄송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쉬는 기간 동안 많이 읽고 생각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얻은 깨달음을 12월에 다시 뉴스레터를 재개하면서 아낌없이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문의사항이 있으신 경우 이메일 twbckr@gmail.com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Bootcamp에 기고한 영어 기사 “Why do good UX professionals pick the wrong companies?”를 편집하여 보내드립니다.

“저는 왜 자꾸만 나쁜 남자에게 빠질까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저를 사랑하는 사람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요?” 패션 잡지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러한 질문들은 진부하긴 하지만, 커리어에 적용해보면 새로운 발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고민하느니 그냥 해보자’는 생활 신조를 가졌습니다. 직접 경험해보아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직장을 선택할 때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고민하느니 그냥 일해보자는 생각으로, 지난 18년간 대기업, 스타트업, 에이전시를 포함한 6곳의 직장에서 일했습니다.
도중에 UX라는 분야를 만나게 된 것은 더없는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는 일에 크나큰 매력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를 찾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제 커리어 연대기를 따라가면서, 지금껏 잘못된 이유로 회사를 선택해온 이야기, 그리고 그 결과 제가 얻게 된 교훈을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1. 남들이 알아주는 회사
일본에서 공부를 마치고 아무런 의심 없이 일본 학생들이 가고 싶어하는 기업 랭킹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기업을 선택했습니다. 당시에는 남들이 알아주는 학교, 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삶의 중요한 미션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들의 눈에 대단하게 보이는 회사와, 내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회사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남들이 알아준다는 이유로 선택한 이 회사는 과거에 빛나는 성공을 거둔 대기업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회사의 발전에 사사건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일류 학교를 졸업한 소위 “엘리트”들로 가득한 환경에서, 누구도 소비자들을 더 잘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잘난 우리들이 프로덕트를 만들면, 알아서 팔리리라는 사고방식이 만연했습니다. 이는 제가 추구하고 싶었던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 사상과 전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사용자 경험이 중요시되면서, 이 회사도 UX라는 걸 해야 한다고 느끼기는 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일단 “UX 부문”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사람들을 이동시켰습니다.
한번은 제가 경합 조사를 하면서, 애플 제품의 파일 전송 속도가 자사 제품보다 빠르다는 결과를 보고한 적이 있었습니다. 관계자들은 불평했습니다. 설정을 바꿔서 다시 테스트할 수 없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좋은 결과를 높으신 분들께 보고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들 사내 정치에 바빠 제대로 된 UX를 추구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였습니다.
이 회사의 UX 추진은 남들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따라가긴 해야 하지만, 제대로 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냥 폼만 잡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UX 커리어를 제대로 추구하기 위해서는 이 회사를 떠나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퇴사를 단행했습니다.
2. 구원받고 싶어하는 회사
“타인을 구원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갖지 마세요” 이 역시 유서깊은 관계 조언 중 하나입니다. 저는 회사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일본의 IT 대기업은 모바일의 시대가 도래하고 난 이후로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에 위기를 느끼고, 사내에 UX 추진 부문을 신설해 업계의 UX 디자이너들을 대거 채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면접관들은 제게 이 회사에 사용자 중심의 문화를 전파해 달라고 했습니다. 내가 이 회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제 마음은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덥썩 오퍼를 받고 말았습니다.
입사 후 저는 곧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제가 배정된 UX 추진 부문에서는 아무도 “진짜 일”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다들 방법론을 논의했고 세미나를 주최하며 신선 놀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2개월 쯤 지나자, 회사는 각자 사내에서 살길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미 채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한 번 사내에서 저를 받아줄 프로덕트 팀을 찾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포토샵으로 UI를 만들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UX 디자이너? 그게 뭔데” 같은 반응을 접하며, 제 마음은 점점 어두워져 갔습니다.
이때쯤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트로피 UX 디자이너였다는 사실을. 뭔가 있어 보이기 때문에 구색 맞추기로 채용되었지만, 사내에는 UX가 뭔지도 모르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이런 회사를 저 혼자서 구원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한 미션이었습니다.
“내가 이 회사를 바꾸겠어”라는 생각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뼈아프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3. 예스만 남발하는 회사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주한 홍콩의 마케팅 에이전시에서 UX 실무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회사와 연이 닿아 홍콩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 첫 임무는 캠페인을 위한 마이크로사이트 제작이었습니다. 처음 하는 일이라 새롭고 재미있었지만, 곧 제가 앞으로도 쭉 하고 싶은 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사람들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가진 제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기업의 목소리만을 대변한 후, 한 철 지나면 잊혀지는 캠페인이 아니라요.
그리고 나서는 호텔 체인의 레스토랑 플랫폼 프로젝트에 투입되었습니다. 큰 예산이 투입된 일이었지만, 클라이언트는 비주얼 디자인에만 크게 집착했고 이렇다 할 밑조사가 이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이 플랫폼이 대체 왜 필요한 건지, 누구를 위한 플랫폼이며, 무엇을 실현하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은 채 프로젝트는 계속 굴러갔고 제 안에서 위화감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에이전시 입장에서는 큰 돈을 준다는데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겠죠. 하지만 디자이너로서, “이것을 왜 만드는가?”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을 게을리하는 것은 직무 태만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사용자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없이 만든 그 플랫폼은 결국 디지털 쓰레기가 되었습니다. 엄청난 예산이 투입된 그 웹사이트는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4. 개인에게 비현실적인 기대를 거는 회사
리서치에 대한 갈망이 점점 커지던 이 때에, 럭셔리 패션 회사로부터 오퍼를 받았습니다. 대규모의 인류학적 소비자 조사를 실시 중이라며, 제 스킬이 이 프로젝트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입사 후 저는 이 회사가 너무나 엉망진창으로 돌아가고 있는 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서버가 다운되어도 일주일씩이나 방치되었고, 매장의 와이파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으며, 개발자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일을 미뤘습니다.
예의 인류학적 조사는 외부의 에이전시에 수주한 것으로, 내부 멤버들은 지시를 내릴 뿐이었습니다. 소비자들에게 많은 인터뷰를 실시하고, 쇼핑 현장을 따라다니기도 하면서 좋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지만, 이를 실제 비즈니스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결국, 화려한 보고서를 만드는데 거액의 예산을 쓴 꼴이 되었습니다.
상사는 매일처럼 저를 비난했습니다. 제 연봉이 비교적 높은 편이라는 점을 들어 “너는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며 말도 안되는 일을 시켰습니다. 심지어 회사의 유통 프로세스를 개선해달라고 했습니다. 물론 UX 디자이너로서 현재 어떤 문제가 있는지 조사하여 보고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부서의 협조 없이 제가 어떻게 기존 프로세스를 뜯어고칠 수 있겠습니까?
조직의 성숙도가 이처럼 낮은 환경에서, 저 혼자서 회사를 구원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게 걸린 기대는 현실적이지도 않았고, 공정하지도 않았습니다.
5. 프로모션에 미친 회사
전자상거래 스타트업이 사업을 세계 전역으로 확장하며 각 지역의 소비자 니즈를 파악해 줄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회사는 제가 가진 리서치 스킬과 언어 구사 능력을 높이 평가했고, 좋은 조건으로 오퍼를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리서치 결과를 기반으로 디자인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저는 인터뷰, 서베이, 애널리틱스 등 다양한 조사 방식을 활용하여 프로덕트 비전을 만들어 내는 데 크게 공헌했고, 이제야 제 능력이 풀로 쓰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패션 브랜드를 클라이언트로 맞이하게 되면서 급속하게 프로모션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일주일에 세일을 서너번씩 하는 이들 브랜드를 위해서 매번 배너를 제작하고, 이메일을 보내고, 홈페이지를 바꿔야 했습니다.
프로모션이 많은 수입을 불러왔기 때문에, 저희는 점점 프로모션에만 집중하고 유저 리서치를 뒷전으로 미뤘습니다. 유저들이 불편하다고 아우성치는, 정말 꼭 필요한 기능을 넣자는 제 목소리는 더이상 사내에 가 닿지 않았습니다. 제 리서치 결과를 보고는 다들 인상깊어했지만, 아무도 행동에 옮기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90%의 시간을 배너를 만들고 이메일을 보내는 데에 쓰고 있었습니다. 하루에도 다수의 클라이언트를 위해 다양한 언어로 100개에 달하는 배너를 만들었습니다. UX를 추구하는 내가 이런 일을 끝없이 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이 회사도 떠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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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치즈를 가지고 쥐를 꾀어내듯, 제 열정을 이용하고자 했던 회사가 많았습니다. “함께 회사를 바꾸어보자,” “사용자 중심의 문화를 만들어보자” 이러한 실속없는 달콤한 말에 속은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지요.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일도 많았고, 귀중한 교훈도 얻게 되었으니까요. 제 교훈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선택지를 끊임없이 모색하며, 한 번에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갑시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세요.
진짜 필요해서가 아니라, 구색을 맞추려는 채용을 하는 회사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속지 마세요.
회사가 약속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믿지 마세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확인하세요.
혼자서 회사를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충분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세요.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언제나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세요.
오늘의 뉴스레터가 여러분의 커리어 선택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저는 당분간 가르침에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3개월도 알찬 나날로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