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하면 너무 이상한 일본 회사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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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지금 생각하면 너무 이상한 일본 회사 이야기 (1)
영어 기사: 7 Weird-ass Moments in Japanese Corporate Life
4. 몇 초 늦으면 반차를 써야 하는 시스템
가전 메이커 회사의 업무 시간은 공식적으로는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 반으로 8시간 반이었고, 45분의 점심 휴게 시간이 있었기에 총 7시간 45분이었습니다. 여기에 약간의 플렉시블 타임이 적용되어 오전 9시 반에서 오후 3시 반까지는 반드시 근무해야 한다는 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원들은 9시 반에 출근해 저녁에 늦게까지 남아있는 편을 택했습니다.
출근과 퇴근 시에는 사무실에 있는 카드 리더기에 사원증을 찍어야 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근무하는 곳이 10층이라면, 10층에 있는 카드 리더기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회사 건물에 들어온 순간부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시간은 업무로 카운트가 되지 않았던 것이죠. 그런데 규정상 9시 29분 59초까지만 유효한 출근으로 인정하고, 9시 30분 이후는 지각으로 처리했습니다.
대중 교통의 지연으로 몇 분 늦어지는 경우에는 ‘지연 증명서’를 가져가면 지각 처리를 철회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9시 30분 이후에 카드를 찍어 지각 처리가 되면 꼼짝없이 반차를 쓰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미 회사에 도착했는데, 몇 초 늦었다는 이유로 반차를 써야한다면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체념하고 그냥 근무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9시 29분은 되는데 9시 30분은 안되는 시스템은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겪어보면 지대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됩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시간은 9시 29분에서 30분으로 넘어가려 하는데, 한 층 한 층 다 서면서 느릿느릿 올라간다면 아침부터 짜증이 폭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출근 시간 내내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커피 한 잔 사 들고 올라갈 여유도 없습니다.
물론 일찍일찍 다니는 것이 사회인의 미덕이라고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렇게 1초의 차이로 가차없이 지각 처리를 해 버리는 회사와, ‘15분 정도는 뭐, 늦을 수도 있지’ 같은 융통성을 가진 회사의 차이는 작지 않습니다. 출근 시간을 이렇게까지 엄격하게 적용하는 회사라면, 다른 일에서도 규칙을 위한 규칙 때문에 고생하는 일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 회사를 7년 반이나 다녔기 때문에, 그 시절엔 ‘어디나 다 이런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지만 이직을 거듭하며 많은 회사를 다녀 본 결과 사실 그렇지 않았습니다. 스타트업 등 작은 회사의 경우에는 출퇴근 시간의 기록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어쩌다가 사원들이 조금 늦어져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 정도의 신뢰는 보여주어야 사원 입장에서도 숨이 막히지 않습니다.
5. 아침에 엘리베이터 앞에서 ‘안녕하십니까!’를 외치는 신입 사원들
손으로 쓴 이력서 제출을 요구했던 IT 대기업에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격하게 된 일입니다. 출근할 때 보니 신입 사원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안녕하십니까!(おはようございます!)를 외치고 있더라고요. 그것도 몇 달이나 계속해서 말입니다. 이건 또 무엇을 위한 수련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 기업은 ‘고행’, ‘인내’, ‘극복’의 경험을 크게 중요시합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한국 속담이 있듯이, 일본에서도 ‘바위 위에서 3년 버티기(石の上にも三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신입 사원에게 ‘힘들어도 3년은 버텨봐라’는 맥락에서 자주 조언으로 인용되는 속담인데요.
저는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열정론은 딱 질색입니다. 비즈니스의 세계에 몸담고 있다면 실속을 챙길 줄 알아야 합니다. 신입 사원들의 리소스를 ‘아침 인사’에 할당해서 얻고 싶은 성과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다면, 이런 일을 시켜서는 안 됩니다. ‘원래 그런 거다’라는 게으른 사고방식은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로 이어집니다.
신입 사원에게는 일을 잘 가르쳐 주는 것이 최고입니다. 교육적인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에 투입해 실전 경험을 쌓게 해주고, 매니저와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커리어의 비전을 그릴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에 더해 다양한 소프트 & 하드 스킬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신입 사원 교육을 ‘배움과 성장’이 아닌 ‘고행과 수련’ 각도에서 접근하는 것은 중세의 마인드셋입니다.
6. 엔지니어도 나가서 두 달간 TV를 파세요
저는 가전 회사에서 TV를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사용자들이 리모컨을 눌러 채널을 바꾸거나 밝기를 조절하려 하면, 그 신호를 텔레비전 안에 이식된 마이크로컴퓨터가 받아들여 명령에 따라 각종 디바이스를 제어합니다. 그 제어 알고리즘을 소프트웨어로 구현하는 것이 제 일이었어요.
하지만 입사하고 나서 일년간은 일다운 일을 해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처음 몇 달 간은 신입 사원 연수라는 명목으로 내내 법이니 특허니 비즈니스 매너니 하는 것을 배웠고, 그 이후에는 팀 프로젝트를 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느라 양산되어 팔려나가는 TV에는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어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가전 양판점에 나가서 TV를 팔라고 하더라고요. 그것도 두 달 간이나 말입니다.
아무리 사방이 꽉 막힌 오피스에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직접 판매 일선에 나가 고객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 ‘판매 연수’의 취지가 그런 것이었다면 저도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기억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일본에서 가전 양판점과 메이커 간에는 이상한 갑을관계가 있었습니다. 일견 동등하게 비즈니스를 하는 관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메이커가 ‘팔아 주세요’라며 굽신굽신 하면서 양판점에 부탁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다들 ‘원래 그렇다’고 했습니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관습이었습니다. 따라서 저같은 메이커의 신입 사원들은 가전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연말이 되면 차출되어 양판점에 일손으로 상납되는 것이었습니다.
양판점의 문화는 최악이었습니다. 출입 시에는 가방 검사를 했습니다. 제가 뭐라도 훔쳐갈까봐서요. 그냥 구경하고 있는 손님들에게 적극적으로 가서 말을 걸지 않으면 매니저에게 혼이 났습니다. ‘그렇게 할거면 그냥 집에 가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사실 전 TV를 비교적 잘 팔고 있었다고요. 그렇게까지 혼날 짓을 한 적은 없는데도 말입니다. 영업이 끝나면 청소까지 해야 했습니다. 매니저는 또 ‘먼지가 남아 있다’면서 화를 냈습니다. 저는 이 양판점에서 월급을 한 푼도 안 받는데 말입니다.
엔지니어라는 직종으로 사람을 뽑아놓고, 첫 해에 두 달이나 판매 일을 시켰던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회사의 횡포였다고 느낍니다. 일단 제가 동의한 적이 없고, 계약에도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일본의 전통적인 대기업의 커리어 플랜은 25세부터 65세까지 40년을 같은 회사에서 일할 것을 전제로 짜여져 있습니다. 따라서 첫 일 년은 그냥 교육에 전념하고 필요할 때 잡일도 좀 시키고 하더라도, 나머지 39년에 걸쳐 본전을 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1980년에는 통했을 방식일 수도 있지만, 지금같은 시대에는 사람을 뽑아놓고 일년 내내 상관없는 일을 시키는 것은 상당히 비상식적입니다. 회사에게도 사원에게도 시간의 낭비입니다.
7. 신입 사원 재롱 잔치 (新人芸)
두 달간 열심히 TV를 팔고 오피스에 복귀하니, 이번에는 송년회에 있을 신입 사원 재롱 잔치 준비를 하라고 하더군요. 일보다도 이게 더 중요하니 시간을 들여서 잘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선배들은 작년 신입들은 웃기지 못해서 재미가 없었다면서 이번에는 기대가 크다고 했습니다. 그 자리에 부문장부터 시작해서 높은 사람들이 다 올텐데, 그들을 웃겨 주어야만 앞으로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해의 TV 개발부문의 신입 사원은 저 포함 세 명이었습니다. 한 명은 친한 여자 동기였고, 또 한명은 허풍이 심한 남자 동기였습니다. 남자 동기는 자기가 기왓장을 부술 줄 안다면서 사람들 앞에서 기왓장을 열 장 쌓아놓고 깨버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TV 판매 연수를 배경으로, ‘갑자기 기왓장도 깨고 접시도 돌리고 얼굴에 파이도 맞아 가면서 지나치게 TV를 열심히 팔았던 우리들’이라는 테마로 제가 극본을 썼죠. SNL 스케치 느낌의 지나친 과장으로 웃음을 끌어내고자 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선배들은 빵빵 터졌습니다. 기왓장을 깨겠다던 남자 동기는 열 장이 넘게 쌓아놓은 기왓장에 주먹질을 했지만 허망한 ‘푹’ 소리만 나고 단 한 장도 깨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걸 어쩌나’ 싶어 사색이 되었지만 그게 또 뻘하게 웃겨서 폭소를 자아냈습니다. 부문장님은 ‘올해 신입 재롱 잔치는 역사상 최고였다’라는 코멘트를 남겼고, 선배들도 ‘재능 있다’며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기왓장 일부러 웃기려고 안 깬거냐’는 질문을 받아 식은땀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재능을 발휘해서 성취감을 느꼈던 최초의 순간이 업무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신입 사원 재롱 잔치였다는 점은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이 나고, 참 일본 기업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구시대적인 관습이다보니 몇 년 지나지 않아 신입 사원에게 재롱 잔치를 강요하는 문화는 사라졌지만, 이후에도 잘 먹고 잘 마시고, 술자리를 마련할 줄 알고, 이차 삼차로 가라오케까지 스무스하게 윗사람들을 모실 줄 아는 사람들의 능력은 과대 평가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또 유독 승진을 잘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워낙 직장에서는 무엇보다도 업무 능력으로 평가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식으로 먹고 마시고 가라오케 그리고 캬바쿠라로 이어지는 유희의 장에서 끼리끼리 친목하고 끌어주는 문화에 큰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번은 부문장님이 제가 일을 잘 한다는 소문을 듣고 저를 끌어주고자 술자리에서 가라오케로 이어지는 자리에 불러 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비판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감지하자, 다시는 저를 부르지 않더군요. ‘쟤는 독이 있다’고 뒷담화까지 하고 다녔습니다. 끼리끼리 친목하는 장에 필요한 사람은 자기 주장이 없고 고분고분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전혀 아쉽지 않았습니다. 제 ‘비판적 사고’ 때문에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제 인생을 살 수 있었고, 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여러분들과 연결될 수 있었으니까요. 누군가에게는 ‘독’으로 느껴졌던 날카로움과 ‘아닌 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당돌함은 글을 쓸 때에 저의 가장 큰 무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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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2: 최근에는 크레이프에 꽂혀서 홍콩의 크레이프집을 하나씩 다 가보는 중입니다. 전부 다 정복하거나 제가 질릴 때까지 이 취미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네요.
3: 20대 초반에 피규어 스케이트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또 하겠지’라는 마음으로 스케이트화를 버리지 않고 있었어요. 거의 20년이 지나서 부처님 오신 날에 드디어 아이스링크에 다녀왔습니다! 앞으로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시간을 내서 스케이트를 타고 싶어요.
4: 날씨가 좋아 번화가인 코즈웨이베이에 다녀왔습니다. 아무렇게나 찍어도 홍콩은 참 나름의 정취가 있어요.


